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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일류기업은 무엇이 다른가

ezkyungli 2005-03-01 10155

우리 나라 기업들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해외 선진기업을 쳐다보고 부러워하기만 했다. 그러던 사이 우리도 어엿한 세계 일류기업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의 일류기업에는 어떤 기업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발자취를 점검해 본다.

유럽 속담에 예언자는 마을을 떠나야 존경 받는다는 말이 있다. 제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라도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 뛰어남을 모르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우리 기업현장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서구의 선진기업을 열심히 배운 결과 지금의 한국 기업은 세계적인 규모와 성과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일류기업은 우리와 가까이 있어서 친숙하다는 이유로 존경 받지 못해왔다. 여전히 많은 한국 기업들은 벤치마킹 대상을 해외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물론, 해외 기업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일류기업을 찾아서 살펴보는 것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우리 일류기업들의 경영전략은 한국의 많은 기업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류기업 선정 조건

어떤 조건을 충족한 기업들을 우리는 일류기업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첫번째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생산 제품 혹은 서비스의 해당 시장점유율이다. 구체적으로 세계 시장점유율이 3위 이내의 수준이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산업의 성숙기 진입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소수의 상위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2001년 맥킨지의 보고서(The Rule of Three)는 소수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갈수록 증대되어 상위 3개 기업이 전체 시장 매출의 70~90%를 점유하고, 시장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상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기업의 매출총액이다. 기업의 총매출액은 대표적인 성과지표로 기업의 크기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기업의 위상을 나타내 주기도 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기업 순위에 관한 대표적인 지표인 포춘의 지표들(포춘 글로벌 500, 포춘 아메리카 1000 등)은 단 하나의 기준, 매출총액만을 가지고 산정한다.

세 번째로 시가총액을 고려해야 한다. 시가총액은 기업의 현재 가치와 미래 가치를 함께 보여주는 유일한 지표이다. 실제로 시가총액은 비즈니스위크 1000(BW 1000), 파이낸셜타임즈 500(FT 500) 등의 순위 지표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이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업이익이 고려되어야 한다. 기업은 이윤추구가 존립 근거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는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다. 그러나 당기순이익은 순수한 영업활동 이외의 요소들에 영향을 받는다. 또한 비경상 항목의 영향으로 변동성이 높다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즉, 영업이익만이 기업의 정당한 매출활동으로 인한 이익을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인 것이다.

한국의 일류기업

위에서 살펴본 네 가지 기준을 가지고, 거래소 상장기업과 코스닥 등록기업 1,581개(KISLINE 자료) 전체를 대상으로 한국의 일류기업을 선정했다. 먼저 시장점유율 측면에서는 산업자원부의 자료를 참고했다. 산업자원부가 2001년 하반기부터 선정한 ‘세계일류상품’을 기준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3위 이내의 제품을 가진 기업들을 추려냈다. 2004년 상반기까지 세계일류상품으로 총 384개의 제품이 선정됐고, 여기에 해당하는 기업 수는 294개이다.

이 중 산업의 규모를 고려하여 수출 실적이 1억 달러 미만인 제품들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매출 기준은 2003년도 회계기준으로 매출총액이 5000억원 이상으로 정했다. 현재 대기업을 평가하는 통상적인 기준인 매출 1000억원에 다섯 배를 곱한 수치이다. 주식시장의 평가는 시가총액의 상승률을 이용하였다. 1999년 말부터 2004년 말까지, 5년간의 거래소와 코스닥 전체의 시가총액 연평균상승률(CAGR)과 개별기업의 동 기간 연평균상승률을 비교했다. 1997년과 1998년은 IMF사태의 충격으로 인해 주식시장의 평가가 왜곡된 경우가 적지 않았으므로 1999년을 기준으로 설정했다. 이 기간 동안 전체 시장의 시가총액 상승률은 1.3%였는데, 일류기업의 기준은 10% 이상으로 잡았다. 마지막으로 영업이익률 항목은 1999년부터 2003년간의 평균 영업이익률을 지표로 설정했다. 수익의 변동폭이 큰 금융업 등을 제외한 동 기간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인 3.23%보다 낮은 기업들은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무엇이 그들을 만들었는가?

이들 일류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것처럼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단지 기술력만으로 일류가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사업전략, 운영전략, R&D전략, 글로벌 전략, 기업문화 등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에 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설명력이 있다.

●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

미래를 위한 투자와 사업 구조 변화의 필요성은 많은 기업들이 인지하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이 보여주는 미래에 대한 투자는 매우 과감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의 과감성은 단순히 그 규모의 거대함 뿐만 아니라 투자의 신속함과 장기적 안목을 포함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서 보여준 신속한 대규모 투자는 전자 업계의 성공 공식이 되었다. 삼성은 반도체, LCD, NAND 플래시 메모리에 이르기까지 과감한 투자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경쟁업체보다 더 빠르게, 더 대규모로 투자하는 전략은 전자업계를 넘어서 한국 일류기업 전반에 공히 나타난다. LG화학, SKC 등은 전체 투자금액의 절반 이상을 미래 승부 사업인 정보전자 소재에 쏟아 붇고 있다. 전기로 공법의 세계 1인자인 INI도 고로 사업 진출을 위한 M&A에 무려 1조원 이상을 지출할 계획이다. 또한 대표적 보수 산업인 식품업계의 강자 농심 역시 매출의 8% 이상을 글로벌 역량 강화에 투자하고 있다.

풍산, 현대자동차 등은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를 해왔다. 세계 3대 신동(伸銅)기업인 풍산은 우리에게 동파이프로 잘 알려진 기업이다. 그러나 현재 매출 구조상 동관은 15%밖에 차지하지 않고 있다. 풍산은 90년대 초반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동관 등 일반재 제품의 매출 비중을 8년 간에 걸쳐 70%대에서 40%대로 과감하게 낮추고 고부가가치 비중을 50%대로 늘렸다. 이러한 노력으로 풍산은 2001년 동 가격의 폭락에도 불구하고 10%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는 등 원가 경쟁이 심한 비철 금속산업에서 보기 드물게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평균 12% 이상의 고수익을 달성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역시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엔진에 있다는 판단 하에, 모든 외국 기업의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20년 이상 대규모의 자본을 꾸준하게 투자한 결과 일본 기업인 미츠비시로 수출할 정도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세타엔진을 개발했다.

● 모방에서 혁신으로

일본의 대표적 경영 기법인 TQM(전사적 품질관리)과 JIT(재고관리) 시스템의 원류는 미국 학자인 데밍의 통계학적 방법론이었다. 미국의 품질관리 이론을 받아들인 일본의 기업들이 스스로의 개선과 개량을 통해 일본 특유의 관리 기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국의 일류기업들도 그 면면을 살펴보면, 모방에서 시작하여 결국 자신에 적합한 방식을 창조해 내는 사례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로 LG전자의 혁신활동을 들 수 있다. GE의 생산성 향상 운동인 식스시그마 혁신 방식을 도입한 LG전자는 이 방식을 자사에 맞도록 창조적으로 운영했다. LG전자가 주목한 것은 GE의 통계적 방법론보다 변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LG는 혁신학교를 통해 식스시그마의 통계적 관리 기술보다는 혁신하고자 하는 정신과, 전체적인 해결을 지향하는 주먹밥식 사고를 배양시켰다. 이를 기반으로 자사만의 독특한 TDR(Tear Down & Redesign)조직을 활성화했다. 문제점을 철저히 분해하여 부분이 아닌 전체의 개선을 목표로 하는 이 조직들은 이제 전체 조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본사 인원의 60%, 창원공장 인원의 40% 이상이 각자의 TDR팀에 소속해 활동하고 있으며, 수백 가지의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 핵심역량에 기반한 변신

핵심역량에 기반한 변신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회사는 캐논이다. 복사기의 캐논에서 디지털 카메라의 캐논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룬 힘은 핵심역량인 정밀광학 기술이었다.

한국의 일류기업들 역시 변신의 동력을 내부의 역량에서 찾고 있다. 브라운관(CRT)용 새도우마스크의 절대 강자인 LG마이크론은 최근 디스플레이 산업의 평판화가 급속히 진행된다고 판단, 향후 성장을 이끌 PDP와 LCD 부품인 PDP 후면판과 포토마스크로 주력 제품을 신속하게 바꾸었다. 작년 1,900억원, 올해는 매출의 35%에 이르는 2,300억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도 주효했지만, 이를 가능케 했던 본질적인 요인은 LG마이크론이 보유한 핵심역량인 에칭 기술이었다. 현재 LG마이크론의 PDP 후면판은 동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에칭 공정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 삼성SDI 역시 자사가 가진 핵심역량으로 브라운관 전문 기업에서 디지털 디스플레이 기업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하였다. 30년 넘게 브라운관 사업에 주력, 세계 최고 수준이 된 화면구현 기술과 생산 기술은 7년 이상의 장기적 R&D투자와 결합하여 삼성 SDI를 브라운관(CRT)에서 PDP, TFT-LCD(삼성전자로 이관)에서 STN-LCD과 OLED의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시켰다.

● 집중적인 측면 공략 후 정면 승부

글로벌 경쟁의 후발 주자인 우리 기업들이 보기에 주요 선진 시장은 선진 다국적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압도적인 시장이었다. 특히 주력 제품군은 일류 선진기업들의 각축장이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측면을 공략하는 것이다. 즉, 주요 선진 시장에서 비주력 제품군 시장의 점유율을 높여 경쟁력을 키우고, 비록 선진 시장이 아니더라도 경쟁이 심하지 않은 유망 지역을 선정하여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렇게 쌓은 역량은 주력 제품군에서 선진 일류기업들과 정면으로 승부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현대자동차의 미국 소형차 시장에서의 성공과 인도 시장에서의 성공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는 자동차 시장의 최대 격전지인 미국 시장에서 주력 제품군인 중대형 제품군을 피해 소형차와 중형차에 역량을 집중했다. 현대는 더 싼 값에 더 좋은 품질의 차를 출시하는 데에 다소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 자사의 역량을 여기에 집중시켰다. 미국시장에서 19년을 버티는 동안 이 전략은 주요했다. 선진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중급 이하 수준의 제품군에서 현대는 시장점유율을 높여 나갔다. 이렇게 십여 년 쌓아온 역량은 EF소나타의 구매초기 소비자 만족도 1위(JD파워 조사)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2004년 현대는 새롭게 개발한 NF소나타를 가지고 주요 제품군인 중대형차 경쟁시장으로의 본격적인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인도 시장에서의 약진 역시 글로벌 시장에 대한 측면 공략의 좋은 사례다. 인구 12억의 잠재 시장인 인도에 현대가 진출할 당시 서구 기업들은 열악한 산업환경과 낮은 GDP 등을 이유로 이 시장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 현대는 경쟁 강도가 약한 이 시장을 집중 공략하여 시장 점유율 2위의 기업이 되었다. 현대는 내년도 인도시장에서 한화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 위기감 조성 및 유지

“현재 상황을 위기로 규정하고 이제부터 비상경영을….”, “실패를 답습하지 말고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부도위기에 몰린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할 듯한 이런 말들을 한 사람들은 작년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낸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들이다. 다른 일류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위기의식을 강조하고 조직 내 위기감을 체질화 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뜻 패배의식으로 확산 될 수 있는 조직 내 위기감은 이제 글로벌 경쟁 시대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세계 최고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극한 경쟁의 상황에서 기업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 그 변화와 혁신의 기본 조건이 위기의식이기 때문이다. 도요타가 무서운 것은 도요타식 생산방식도 있지만, 도요타 조직 내에 체화된 위기의식이다.

세계 최대의 매출과 이익을 내는 그 순간에도 최고경영자는 위기를 부르짖고 있고, 자발적으로 임금을 동결하는 등 조직 구성원 모두가 그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일류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은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이에, 이들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진실성을 가지고 객관적인 정보와 사례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위협 요인을 강조함으로써 조직의 위기의식을 유지하고 있다.

자사만의 경영 방식에 집중해야

한국 일류기업들의 경영 방식을 보면 두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하나는 자신에 가장 적합한 것을 창조해 냈다는 점이다. 현재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한 미래 사업 투자 전략을 세웠으며,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것에 있어서는 정면 대결이 아닌 측면 공략 방법을 통해 경쟁력을 쌓았다. 또한 좋은 기법을 들여오되 이를 자신의 환경에 맞게 변형시켰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축적한 핵심역량을 기반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두 번째는 이러한 전략을 흔들림 없이 집중적으로 실행했다는 점이다. 실행력과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위해 조직은 위기의식을 가진 긴장감이 있는 조직으로 변하고 있다. 한국의 일류기업들 중에서 초일류로 거듭나고 있는 기업들은 이제 벤치마킹을 할 대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자사의 수준이 성장했고, 무엇보다도 승부는 자신에게 적합한 전략을 개발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실행하는 것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초일류기업이라고 누구나 인정하는 GE와 도요타의 경영 방식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GE WAY, TOYOTA WAY라고 부른다. 자사에 최적화된 전략을 개발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실행하는 …WAY를 만드는 것은 초일류로 나아가는 열쇠이다. -끝-

[자료 : LG경제연구원, 유호현, 주간경제 8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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